2011년 8월 21일 일요일

컴퓨팅 역사를 바꾼 21명의 위인들


컴퓨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누구일까? 최근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당신은 들어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컴퓨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21명’에 대해 소개했다.
1. 하워드 에이킨(Howard Aiken)
에이킨은 최초의 프로그램 방식 디지털 컴퓨터 마크원을 1944년에 만든 사람으로 유명하다. 당시 마크 원은 계전기를 사용하여 1초에 덧셈을 3번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금 컴퓨터 사용자들이 볼 때는 매우 ‘1초에 덧셈 3번’이 매우 우습게 느껴질지 모르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능력이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마트I의 도입으로 현대 컴퓨터의 시대가 열렸다”며 에이킨을 자랑했다.
2.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Grace Murray Hopper)
IT관련 업계 사람이라면, 이 여성의 이름은 한번 쯤 들어보지 않았을까? 호퍼는 바로 버그와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의 창시자다. 그녀는 앞에서 설명한 하워드 에이킨 지도 아래 마트원의 프로그램 개발을 담당하고, 이후 마크2, 마크3 개발에도 참여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개발 과정에서 호퍼는 ‘디버깅’이라는 말을 최초로 만들어낸 여성”이라며 “당시 마크2 전지에 나방이 끼어 기계가 작동하지 않자, 그녀는 ‘버그(벌레)가 발견됐다’고 기록했다”라고 전했다. 이후 버그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를 의미하는 말로 전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호퍼는 또한 최초로 영어를 사용한 컴파일러 언어인 ‘플로우 매틱’을 개발했다. 이로써 기계어가 아닌 영어로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 그 뒤 호퍼는 플로우 매틱을 발전시켜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인 코볼을 개발해냈고, 고급 프로그래밍 언어의 일인자가 됐다.
3. 켄 톰프슨과 데니스 리치(Ken Thompson and Dennis Ritchie)
유닉스의 아버지들은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켄 톰프슨과 데니스 리치는 유닉스 시스템을 최초로 개발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들이 만약 유닉스를 개발하지 않았다면, 현재 애플은 없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4. 더그와 게리 칼스톤 형제(Doug and Gary Carlston)
90년대 초반 컴퓨터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해봤을 게임 ‘페르시아의 왕자’를 바로 이들이 개발했다. 칼스톤 형제는 게임 회사인 ‘브로더번드 소프트웨어’를 공동 창시하고 1980년부터 1999년 사이 주옥 같은 게임들을 개발해 내 가장 성공한 게임회사로 성장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들의 등장은 컴퓨터 게임에 있어 혁명”이라며 “이들 때문에 게임 컴퓨터 게임 마케팅이 발전할 수 있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5. 켄과 로버타 윌리엄스 부부(Ken and Roberta Williams)
게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사람에 칼스톤 형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윌리엄스 부부도 있었다. 이들 부부는 그래픽 어드벤처 게임인 ‘미스테리 하우스’를 개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들 부부가 설립한 회사인 ‘시에라 온라인’을 통해 컴퓨터 게임의 한 장이 또 열렸다”라고 설명했다.
6. 찰스 벤턴(Charles Benton)
최초의 성인용 게임은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하지 않는가? 바로 찰스 벤턴이 만들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최초의 성인용 게임 시나리오를 찰스 벤턴이 썼다”라고 소개했다.
7. 시코어 크레이(Seymour Cray)
슈퍼 컴퓨터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시모어 크레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시모어 크레이는 슈퍼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린다”라며 “그가 있었기 때문에 슈퍼 컴퓨터의 기준이 마련됐다”라고 설명했다.
8. 마빈 민스키(Marvin Minsky)
마빈 민스키는 “인간은 생각하는 기계이다”라는 명언을 남긴 인공지능 분야의 유명한 과학자다. 민스키는 MIT 인공지능연구소 공동설립자로 ‘인공지능의 아버지’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민스키는 지금까지 계속 컴퓨터의 지능을 사람의 수준으로 높이기 위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민스키는 인공지능 분야 외에도, 로보틱스, 수학, 가상현실 등 여러 학문에 영향을 끼친 학자”라며 “민스키 덕분에 인공지능 분야가 1960년대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뤄냈다”라고 설명했다.
9. 밥 알브레치(Bob albrecht)
알브레치는 피플컴퓨터를 설립해 어린이들이 컴퓨터를 즐겁게 참여할 수 있게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알브레치는 최초의 기술 전도자”라며 “그로 인해 수많은 젊은 프로그래머들이 생겨나게 됐다”라고 소개했다.
10. 스티브 돔피어(Steve Dompier)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돔피어에 대해 “그는 컴퓨터가 노래도 부를 수 있다고 믿게 만든 장본인”이라며 “비록 그가 1975년 컴퓨터 클럽에서 보여준 ‘컴퓨터의 노래하는 모습’은 주파수를 이용한 속임수였지만, 사람들은 컴퓨터가 말도 하고 노래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11. 존 드레이퍼(John Draper)
존 드레이퍼라는 실명보다는 ‘캡틴 크런치’로 유명한 컴퓨터 프로그래머다. 그는 장난감 호루라기를 이용해 전화 조작을 시도한 최초의 해커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드레이퍼 때문에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전화기를 조작해 무료로 통화하는 혜택을 누렸다”라며 “이후 미국내 전화망 침입이 증가했다”라고 설명했다.
12. 리 펠젠스테인(Lee Felsenstein)
펠젠스테인은 컴퓨터를 이용해 자유로운 네트워크 건설에 필요한 개인용 컴퓨터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선 프로그래머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펠젠스테인은 홈브루 컴퓨터 클럽의 원년멤버”라며 “그가 오스본을 디자인 했다”라고 설명했다. 홈브루 컴퓨터 클럽은 실리콘밸리에 있는 초키 컴퓨터 취미생활자 클럽으로, 스티브 잡스도 이 클럽의 회원으로 알려졌다.
13. 존 매카시(John McCarthy)
‘리습’(Lisp : list processing)을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매카시도 기억할 것이다. 리습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바로 매카시이기 때문이다. 리습은 문자열을 쉽게 다루기 위해 설계된 프로그래밍 언어로 1959년 매카시가 발명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드는 “리습의 등장으로 인공지능 분야 개발이 한층 더 쉬워졌다”라고 설명했다.
14. 에드 로버츠(Ed Roberts)
로버츠는 ‘PC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그는 최초의 PC ‘알테어8800’을 발명했다”라며 “그가 만든 PC에 빌 게이츠와 폴 앨런이 최초로 소프트웨어를 만들어줬다”라고 설명했다.
15. 리차드 그린블라트(Richard Greenblatt)
1967년 MIT 출신 1세대 해커였던 그린블라트는 ‘맥핵’이라는 체스 프로그램을 개발했다. 당시 이 프로그램은 인간을 상대로 단독으로 게임할 수 있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당시 철할자이자 아마추어 체스 선수였던 후버트 드레퓌스가 ‘인공지능에는 한계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맥핵에 도전장을 내밀었다”라며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맥핵의 승리로 끝났다”라고 말했다.
16. 더그 엥겔바트(Doug Engelbart)
컴퓨터 못지않게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마우스다. 그리고 세계 최초의 마우스는 바로 엥겔바트 손에서 탄생했다. 1968년 엥겔바트가 만든 마우스는 현재 마우스와 비슷하게 바퀴를 바닥에 굴려 움직이면 화면의 커서가 좌우상화로 움직였고, 손안에 들어왔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엥겔바트가 만든 마우스는 나무로 만들어진데다 사용하기에는 모양이 좀 투박했지만, 그 기본원리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17. 이반 서덜랜드(Ivan Sutherland)
비즈니스 인사이드는 “서덜랜드는 인간과 컴퓨터 상호작용 문야에서 혁신적인 인터페이스 디자인을 가진 스케치패드 발명자”로 유망하다고 서덜랜드를 소개했다. 스케치패드는 직관적인 그래픽을 사용해 상호작용하는 컴퓨터 인터페이스 장치다. 이후 스케치패드는 최초의 그래픽 사용자 인터페이스로 발전하게 된다.
18. 팀 패터슨(Tim Paterson)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 MS-DOS가 있기 전에 QDOS가 있었다. 팀 패터슨은 바로 이 QDOS를 개발한 사람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빠르고 간편한 운영체제라는 뜻의 QDOS가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 연구원의 손에서 탄생했다”라며 “만약 빌게이츠가 패터슨으로부터 2만5천달러에 QDOS를 사들이지 않았다면, 운영체제의 역사는 바뀌었을지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19. 댄 브릭클린(Dan Bricklin)
최초의 스프레드시트 ‘비지칼크’ 소프트웨어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브릭클린이다. 비지칼크의 등장으로 컴퓨터는 사무용으로서의 가치를 가지게 됐다. 이후 개인용 컴퓨터 시장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한다. 비즈니스인사이드는 브릭클린을 두고 “스프레드시트의 아버지”라며 “당시 사람들이 비지칼크를 사용하기 위해 컴퓨터를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20. 밥 칸과 빈트 서프(Bob Kahn and Vint Cerf)
칸과 서프는 전세계에 난립해 있던 패킷 스위칭 기반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어 전 세계를 통합하는 프로토콜을 개발했다. 이들은 TCP/IP를 통해 인터넷을 탄생시켰다. 이들이 TCP/IP를 개발하기 전에 네트워크들은 서로 호환되지 않았다. 각각의 네트워크들이 서로 다른 프로토콜과 패킷 사이즈, 전송속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서로 데이터를 주고 받을 수 없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이들 덕분에 우리가 오늘날처럼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게 됐다”라며 칸과 서프를 “인터넷의 선구자”라고 소개했다.
21. 니콜라스 워스(Niklaus Wirth)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워스는 여러 프로그래밍 언어를 설계한 프로그래머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작품 중 최고는 바로 파스칼”이라고 설명했다. 파스칼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사이 가장 널리 이용된 프로그래밍 언어로, 포인터를 사용한 구조적 프로그래밍을 특징으로 한다.
앞서 소개한 21명 중 우리는 몇 명이나 알고, 기억하고 있었을까? 중요한 것은 이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같은 컴퓨터의 발달은 없었을 것이다.

출처 : Bloter.net

벌써 스무살?…리눅스 ‘탄생 20주년’


안드로이드, 웹 운영체제(OS), 셋톱박스, 위키피디아, 구글, IBM의 왓슨.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이들 사이에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리눅스를 사용한다는 것. 안정성과 보안성, 그리고 낮은 총소유비용(TCO)이라는 리눅스의 장점 때문에 많은 개발자들이 리눅스를 활용하고 있다.
이런 리눅스가 태어난 지 올해 딱 20년이 됐다. 20년 세월 동안 리눅스는 우리 생활을 참 많이 바꿨다. 테크크런치는 리눅스제단의 ‘리눅스 20주년 기념 인포그래픽’을 인용해 리눅스가 과거와 비교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봤다.
우선 리눅스를 사용하는 개발자들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1992년 100명에 불과했던 리눅스 커널 개발자들이 8년 뒤인 2010년에는 10배 늘어 1000명이 됐다. 엄청나게 많은 개발자들이 리눅스를 활용하기 시작한 것.
개발자가 증가한 만큼 코드 라인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995년 25만줄에 불과했던 코드 라인들은 2010년 1400만 줄이 됐다. 그러면서 동시에 1998년 단 1대의 슈퍼컴퓨터가 리눅스를 사용했다면, 이제는 413대의 슈퍼컴퓨터가 리눅스를 사용하고 있다.
리눅스의 활용사례는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리눅스를 기반으로 한 휴대폰이 1997년에는 1억대가 팔렸다. 이후 안드로이드 운영체제가 등장하고 이를 활용한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3년 뒤에는 46억대가 팔렸다.
인터넷 사용자 역시 1995년에는 1600만명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16억명으로 증가했고, 지금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리눅스가 탑재된 PC는 1994년 37만대에 불과했지만, 2010년에는 3억5100만대가 팔리면서 6년 사이 10배 가까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다.
리눅스와 관련된 특허도 많이 등장했다. 1994년 17만7830개에 달했던 리눅스 특허는 2010년 52만277개가 됐다. 리눅스를 사용하는 개발자가 증가하면서 같이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20년 세월 동안 리눅스 확산에 영향을 미친 프로그램들도 변화가 있었다. 리눅스 등장 초기에는 페도라와 레드햇이 리눅스 확산에 기여를 많이 했다면, 이제는 우분투가 대세다.
또한 집보다 직장에서 리눅스를 활용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다. 그만큼 리눅스가 우리 주변에 친근하게 다가온 셈이다.
리눅스파운데이션은 “페이스북이나 아마존, 이베이와 트위터가 리눅스 기반”이라며 “이들의 큰 성공이 있기에 앞으로 리눅스의 발전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전세계 집단 지성의 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오픈소스의 대명사 리눅스. 또 다른 10년의 변화가 기대된다.

출처 : Bloter.net

2011년 8월 9일 화요일

8월 6일 오늘의 묵상

한 그루의 나무, 그냥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나무에게 나이를 물어보고 살아온 이야기들을 물어보십시오. 그 옛날 어느 때인가 한 작은 씨앗으로 생겨나 여기 이 땅에 터를 잡았던 그 사연을 물어보십시오. 긴 세월 동안 스쳐 갔던 밤과 낮, 비와 눈, 바람과 이슬, 계절의 변화 겹겹이 품고 있는 나무의 모든 이야기를 물어보십시오.

발끝에 부딪히는 돌멩이 하나, 그냥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돌멩이에게 나이를 물어보고 살아온 이야기를 물어보십시오. 수억 년 그 땅속 깊은 곳에 굳어지고 굳어져 저 산꼭대기 우뚝 바위로 솟아올라 당당했던 시절의 이야기, 비바람에 깎이고 깎여 여기 한 덩이 돌멩이가 된 사연을 물어보십시오.

스쳐 지나가는 사람, 그냥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그가 존재하고 살아온 삶의 이야기를 헤아려 보십시오. 태초부터 지금까지 점점이 이어져 온 사람들을 거쳐 여기, 오늘 지금 만난 이 사람이 왜 나와 함께 있는지 물어보십시오. 그의 삶을 듣고 그를 있게 한 역사를 듣고 그를 있게 한 시원(始原)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를 빚어 만든 하느님의 목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우리 눈에 보이는 것, 그 무엇도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가난한 떠돌이 예수님 그 안에 타보르 산에서 보았던 황홀한 세계가 있듯, 보이는 것 그 깊은 곳에 눈부신 부활의 세계가 있습니다. 우주 만물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생겨났고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으니, 그 깊고 깊은 곳에는 하늘 나라가 있습니다.

나무는 저 깊은 곳에서 하늘 나라의 숲이 되고, 돌멩이는 저 깊은 곳에서 하늘 나라의 산이 됩니다. 내가 만난 사람은 저 깊은 곳에서 하늘 나라의 영원한 친구가 되고 보이는 것 모두 다 저 깊은 곳에서 영원한 하느님 나라가 되니, 세상에서 만난 모든 것 모든 이 허투루 보지 마십시오.

2011년 8월 1일 월요일

After School Blue - Wonder Boy


순진한 니 모습이 너무 귀여워 보여
예전에 니가
내게 고백했던 말 날 좋아한다는 그 말
친구로만 지내왔던 우리 지난 시간이 어색하지만
어쩌면 좋아 난 어쩌면 좋아
니가 남자로 보여

Coming coming come to me
나만의 사랑이 되어 줄래
오래 기다려 왔던 꼭 숨겨왔던 그 마음 모아
조금 더 다가와
사랑한다 말해줘 너에게
친구로만 남기는 싫어
날 안아줘

아무런 말 안 해도 그냥 손만 잡아도
떨리는 마음 감추고 싶은 거야
이 바보야 모르겠니
아직은 나 지난 사랑에 가끔 힘이 들어
조금 두려워 하지만 이젠 니가 지켜줄래
너의 여자친구로

Coming coming come to me
나만의 사랑이 되어 줄래
오래 기다려 왔던 꼭 숨겨왔던 그 마음 모아
조금 더 다가와 사랑한다 말해줘
너에게 친구로만 남기는 싫어
내 마음을 그렇게도 모르니
그래도 하나만 꼭 기억해
사랑해

내 눈엔 이렇게 너만 보여
저 하늘의 별보다 제일 빛나는 너를 사랑해
하나만 하나만 약속해주겠니 나에게

너와 같은 꿈을 꾸도록
너와 같은 곳을 볼 수 있도록
영원토록 함께 할 수 있도록
약속해 줘

2nd(?) Story...

처음 글은 Bloter.net 기사를 포스팅 해 보았당.
그래서 나의 이야기는 2번째로 밀려 버렸다. ㅎㅎ
이것은 메뉴를 따로 분류하지 않고 태그로 구분하는 것 같다.
Google+, Facebook, Twitter, Cyworld, me2day, Blog 많이 있고 하니,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정리해야 겠다.

뜬금없지만 보다 밝은 미래, 내가 꿈꾸던 일을 할 수 있도록 힘 냅시당!

30돌 맞은 MS-DOS, 추억도 한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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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특수문자의 조합이 낯익은 독자가 많을 것이다. 찡그린 표정을 한 문자메세지 이모티콘 아니냐고? 틀렸다. MS-DOS 운영체제가 설치된 PC를 부팅하면 만날 수 있었던 최상위 디렉토리와 프롬프트다. 마이크로소프트(MS)의 운영체제 MS-DOS가 미국 현지시각으로 7월27일, 오늘로 꼭 30살 생일을 맞았다.
지금은 거의 잊혀진 MS-DOS의 역사부터, MS-DOS 시절의 추억까지 한 보따리에 묶었다.
1981년 1월, 팀 패터슨 시애틀 컴퓨터 프로덕트 연구원의 손에서 개인용 PC 운영체제가 태어났다. 이름은 QDOS였다. QDOS는 ‘Quick and Dirty Operating system’의 약자로 ‘빠르고 간편한 운영체제’라는 뜻이다.
당시 IBM은 1980년 7월부터 개인용 컴퓨터를 출시할 계획을 하고 있었고, 모든 소프트웨어를 IBM이 직접 개발하기보단 외부 업체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시애틀에 있던 빌 게이츠 MS CEO는 IBM PC 운영체제 공급을 맡았다. 빌 게이츠는 IBM에 운영체제를 공급하기 위해 팀 패터슨으로부터 2만5천달러에 QDOS를 사들인다.
MS로 건너온 QDOS는 MS-DOS(Disk Operating System)로 옷을 갈아입고 IBM 개인용 컴퓨터 운영체제로 공급됐다. 팀 패터슨이 빌 게이츠에게 QDOS를 팔지 않았다면 MS-DOS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PC 운영체제의 역사가 바뀐 선택이었다.
MS-DOS는 IBM PC에 탑재된 이후 업그레이드를 거듭한다. 1983년 출시된 2.11 버전부터는 영어 이외의 언어가 지원되기 시작했다. 1985년 5월엔 국내 업체 큐닉스에서 MS-DOS에서 한글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처음 출시하기도 했다.
1986년 출시된 MS-DOS 3.2 버전은 3.5인치 크기, 720KB 용량의 플로피 디스크를 지원하기 시작했고, 1995년 출시된 7.0 버전은 MS의 윈도우95에 내장됐다. 허나 윈도우 ME에 내장돼 2000년 출시된 8.0 버전을 끝으로 MS-DOS의 역사는 막을 내린다. 2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PC 사용자들의 운영체제 역할을 해온 셈이다.
PC 운영체제로서 MS-DOS의 역사는 끝났지만 지금도 DOS는 이용되고 있다. 그 중 프리 DOS(Free DOS)는 DOS 기반 오픈소스 운영체제로, 저가형 노트북에서 종종 볼 수 있다.
추억이 새록새록! 그 때 그 DOS 게임들
MS-DOS가 서른 살이 됐다고 하니, 문득 어렸을 때 도스 환경에서 즐기던 게임들이 떠올랐다. 지금 쓰는 컴퓨터는 윈도우7이지만 ‘도스박스’라는 도구만 있으면 도스용 게임을 즐길 수 있다.
아래 게임들은 옛 기억을 더듬어 찾아본 게임들이다. MS-DOS가 퇴물이 될 무렵부터 PC를 쓰기 시작했기 때문에, 도스용 게임 중에선 최신 게임에 속하는 셈이다.
흔히 ‘방구차’라는 이름으로 많이 불렀던 레이싱 게임(왼쪽)과 풍선 터뜨리기 게임 ‘팡’.
도스시절 게임이라면 흔히 ‘땅따먹기’라고 불린 ‘보필드’(왼쪽)와 ‘페르시안의 왕자’를 빼놓을 수 없다.
‘너구리’(왼쪽)와 ‘고인돌’ 게임, 고인돌 게임의 원래 제목은 ‘선사시대’다.

출처 : Bloter.net